아침 일찍 골목에서 만난 매서운 공기에 잠깐 움찔했다.
고려대학교에 도착하여 여행자 인증받고 덤으로 간식과 물, 메모수첩과 필기구까지 받아 기분이 좋아졌다.
따뜻하게 데워진 강의실에서 수강생들은 포근하게, 교수님은 땀 흘리시며 열강을 하셨다.
인문학, 학문(學文), 학문(學問)
에 대한 개념 정리와
배우다, 모질다, 어질다에 담긴 깊은 뜻을 들으며 새겼다.
버스를 타고 은세계로 가득한 파주 화석정에 도착했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임진강은 이미 강물과 땅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율곡 이이가 어린시절 지었다는 한시를 풀어주시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눈이 쌓여가는 시비 앞에서 눈사람 처럼 서서
마치 그림 속으로 들어와 그림 속의 인물이 된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마주 보이는 화석정, 사람들, 포근하게 내리는 눈송이는 강렬한 풍경이 되어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풍경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행복감이 솟아올랐다.
이후로 이어진 맛있는 점심과 자운서원, 율곡의 묘, 사임당의 묘, 우계의 묘, 기념관 등은
이미 가슴속에 자리잡은 풍경화의 기억을 대신할 수 없었다.
21세기의 지극히 평범한 내가 이러한데
하늘이 내린 천재 율곡이 아무리 어린 나이라지만
임진강을 마주한 그 적막한 풍경 속에서 시를 풀어내지 않고는 못 배겼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