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사쏙쏙 part 2 에서는 궁궐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경운궁) 모두 조선의 왕이 살았던 공간입니다. 그곳에
방문했을때도 우리는 왕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지요. 하지만 궁궐은 많은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
기도 하였습니다. 경복궁만 살펴본다면 평소 궁궐에는 약 3000명 정도가 상주했다고 해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생활했던 공간인 그 궁궐로 들어가 볼까요?
궁궐의 주인은 누굴일까요? 바로 임금이겠지요. 한 나라의 왕이라고 하면 무척 부러운 일이텐
데요. 조선의 임금은 행복했을까요? 세자시절부터 조기교육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고 임금이
된 후에도 혼자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임금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을 것 같네요.
임금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오전 5시 정도 기상하여 죽한사발 정도 드신 후에 어른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러 가지요.
오전 6시 조강(아침 경연)
오전 8시 아침식사
오전 9시 6품이상 관리들과 정식조회(조참 매월 5, 11, 21, 25일), 조회가 없는 날은 상
참 조회 후 오전 업무
정오 점심식사
오후 1시 주강(낮 경연)
오후 2시 오후업무 및 한가한날은 사냥, 활쏘기 등 체력단련
오후 5시 숙직자 확인 , 석강
오후 7시 저녁식사 및 문안인사
오후 9시 상소문 검토 및 잔무처리 및 독서
오후 10 ~ 11시 취침
어떠세요. 임금이 되고 싶나요? 이것은 일상적인 생활일 뿐이고 업무 외에도 정기적인 예식행
사가 많기 때문에 더욱 힘드셨답니다.
궁궐에는 왕 외에도 왕비과 후궁이 살고 있어요. 모두 왕의 부인이에요. 왕비는 정실부인이고
후궁은 정실부인 외의 사람을 말한답니다. 후궁은 빈, 귀인, 소의, 숙의, 소용, 숙용, 소원, 숙
원의 품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왕 중 가장 많은 후궁을 들인 사람은 바로 3대왕인 태종
이에요. 총 11명의 후궁이 있었고, 성종이 그 다음으로 9명의 후궁이 있었답니다. 우리가 잘
알 고 있는 세종대왕 역시 5명의 후궁이 있었지요. 엄연한 궁궐의 한 일원이랍니다.
후궁은 중궁전(왕비의 거처) 근처의 후미진 곳의 건물에 살았어요.
그리고 왕실의 가장 어른인 대비마마가 계시지요.
이외에는 왕의 자녀들이 살고 있었는데요. 세자를 제외하고는 결혼 한 후에는 궁궐에서 살지
못하였답니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와 가까운 곳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왕비의 자녀인 세자
(원자아기씨) · 대군(둘째 아들부터) · 공주와 후궁의 아들인 왕자 · 옹주가 생활하였습니다.
왕족이 궁궐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많은 궁녀가 필요했답니다. 왕과 왕비 그리고 대비마마
를 수발하는 시녀는 각각 약 100명, 세자는 60여명 등등 총 500여명의 궁녀가 궁궐에서 열
심히 일하고 있었죠.
궁녀가 되기 위해서는 10살 정도에 궁궐로 들어와 15년 정도 공부를 해야 한답니다. 이때는
'각시'라고 부르지요. 견습의 시간이 끝나면 정식 궁녀인 '나인'이 될 수 있답니다. 그리고 또
30년정도를 근무해야 최고의 자리인 '상궁'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어요.
나인이 되면 정식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요. 월급외에도 받을 수 있는 상여금과 같은 것
이 있었기 때문에 보통 농민들 보다는 훨씬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으로써는 높
은 임금을 받는 전문직장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궁녀가 되면 그들을 수발하는 하녀가 있었어
요. 이들을 무수리, 파지, 방자, 취반비라고 부른답니다. 이들은 출퇴근을 하기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궁녀는 결혼을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죽고나면 재산은 형제나 식구들에게 상속하였
고 죽는 것도 평생직장인 궁궐 안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중병이 들면 궁궐에서 나와서 친척들
에게 신세를 지거나 같은 처지의 궁녀들이 함께 살기도 하였습니다. 제사를 지내 줄 자식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화장을 했다고 해요.
여성만 궁궐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왕 옆에 언제나 함께 있는 환관도 있답니다. 흔히 내시
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내시와 환관은 달랐답니다. 내시는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관직이
있 보좌관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환관은 거세된 사람으로 궁중에서 경호나 하인 등으로 일하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런데 고려 말에 환관이 내시가 되는 경우가 생겨서 혼란이 오게 된 것이지
요. 이에 조선 세조때 내시원을 폐지하고 환관만 남게 된 것이랍니다.
세조 이후의 환관에 대해서 알아보면 약 200여명 정도가 궁궐에 있었어요. 환관의 가장 최고자
리는 ‘상선’ 이지요. 얼마 전 방영했던 드라미 “해를 품은 달”에서 훤(왕)을 보좌하는 형선이라
는 인물이 바로 상선이었습니다. 음식을 담당하거나 명령을 전달하거나 궁궐의 문을 담당 하는
등 환관(내시부)의 역할은 궁궐의 곳곳의 살림살이를 관장하는 것이었지요.
환관도 혼인을 하였는데요, 물론 자식을 낳을 수는 없었겠지요. 대부분 거세된 어린 아이들을
입양하여 후계자로 키웠습니다.
이외에도 궁궐을 지키는 수비대들도 있었지요. 금군인데요. 금군이란 궁중 안의 정예군을 뜻
하며 평상시 왕을 경호하는 경호팀이랍니다. 근정전에만 100여명이 근무를 섰다고 해요. 여기
에 궁궐 4대문을 수비하는 수비병만 200명, 궁궐 전체로 하면 약 2000명 정도가 근무했으니
철통수비를 할 수 있었답니다.
이처럼 궁궐에는 나라의 중심인 왕을 비롯하여 그의 가족들 그리고 수발을 들어주는 궁녀들
과 왕의 보좌진인 환관, 철통같이지켜주는 궁궐 수비대 등등 여러 직종의 많은 사람들 생활하
는 직장이자 삶의 터전이었어요. 다음에 궁궐에 가게 된다면 왕과 왕비와 관련된 이야기만 찾
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았던 3000여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주었으면 좋겠
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