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여행자료실
무료웹툰,무료야동,야동사이트,일본야동,토렌트 사이트
  • 곰탱이
  • 14-01-13 23:10
  • 9,647

[역사기사 쉽게 읽기]경남 남해에서 백제귀족의 무덤이 발견되다.

*  이하 2014년 1월 09일 문화일보 기사 내용과 설명을 같이 넣었습니다.
 
 
 
‘신라권’ 경남 남해서 백제귀족 무덤 발굴
                                                                -    고위급 착용 ‘은화관식’ 백제영토 밖서 첫 출토
 
 
 
 
 
가야, 신라권으로 알려진 경남 남해에서 백제 귀족의 무덤이 발굴돼 고고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
 
다. 특히 이 무덤에서는 백제의 고위 관인이 착용한 ‘은화관식(銀花冠飾·사진)’이 백제 영토 이외
 
의 지역에 서는 처음 출토돼 가야·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 연구에 새로운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
 
된다.
 
 
 
 
 => 발굴된 은화관식은 백제의 16관등 중 제 6관등인 '나솔'이상의 관인들에게 수여한 것
 
이랍니다. 백제의 16관등을 알아볼까요?
 
 
 
 1품 좌평, 2품 달솔, 3품 은솔, 4품 덕솔, 5품 간(한)솔, 6품 나(내)솔, 7품 장덕, 8품 시덕,
 
9품 고덕, 10품 계덕, 11품 대덕, 12품 문독, 13품 무독, 14품 좌군, 15품 진무, 16품 극우
 
 
 
 1품 ~ 6품 까지는 자주색의 옷을 입었으며, 7품~ 11품 까지는 붉은 색을 12품 ~16품까지
 
는 푸른색의 옷을 입었습니다. 백제의 관직제도는 고이왕때 6좌평과 16관등제의 기본틀이
 
마련되었답니다.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센터장 류창환)는 9일 남해군 고현면 남치리 분묘군 발굴조사 현
 
장에서 노중국 계명대 교수와 권오영 한신대 교수 등 학술자문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백제계
 
무덤에 대한 조사 내용을 보고하고 향후 보존방안을 논의했다.
 
 

역사문화센터는 2013년 11월부터 고려대장경 판각지로 추정되는 고현면 일대를 조사하던 중 10
 
여 기 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는 남치리 분묘군 1호분에서 백제계의 석실을 발굴했다. 1호분은
 
도굴로 석실의 벽석과 개석 일부가 노출돼 있는데 조사 결과, 횡구식석실묘(橫口式石室墓)로
 
입구에 문주석(문기둥)과 문지방석(문턱)을 설치한 후 판석으로 입구를 폐쇄해 전형적인 백제
 
계의 무덤 형식을 갖추고 있다.
 
 
 
 
=> 남해의 고현면 일대를 조사한 이유는 고려대장경(우리가 팔만대장경이라고 알고 있는
 
그것!)이 이곳에서 판각된 것이 아닌가해서였습니다. 이곳의 무덤을 고려시대 무덤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번 발굴에서 1호분이 백제의 무덤으로 발혀진 것입니다.
 
 
 
 
 횡구식석실묘란. 이름이 아주 어렵습니다만 풀어보면 "굴식계 앞트기식 돌방무덤'입니다.
 
세개의 벽과 천장을 먼저 만들고 시신을 안치한 후 벽을 막는 형식입니다. 무덤의 방이 돌
 
로 만들어 졌으니까 이름이 앞트기식 돌방무덤인 것이지요. 구덩이식 무덤은 시신을 위에
 
서 아래로 넣는 방식을 취하지만 돌방무덤은 방에 출입하듯이 열린 쪽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든 무덤입니다. 따라서 추가장이 가능하지요.
 
 
 
 
 
(경남발전연구원 제공 사진)
 

 
 
 
부장품으로는 은화관식 1점과 관고리 4점, 관못 10여 점 등이 출토됐다. 특히 은화관식은 백제의
 
나솔(6품) 이상의 고위관인이 신분을 표시하기 위해 꽂는 관식으로 알려져 있어 1호분의 매장자
 
를 백제 사비기(538∼660년) 후반 고위관인으로 센터는 추정했다. 은화관식은 백제사비기의 도읍
 
이었던 부여지역을 중심으로 모두 12점(파편 포함)만 발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번에 발굴
 
된 은화관식은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 서탑에서 발견된 것과 가장 유사하다고 센터
 
 측은 밝혔다. 류창환 센터장은 “은화관식은 남해가 7세기경 일시적으로 백제의 영향 아래 있었
 
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이번 발굴이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
 
면서도 백제의 영향인지, 실제 백제 것인지 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서정석(백제고고학) 공주대 백제문화연구소장은 “남해에 살던 가야의 토착세력이 백제의 관등을
 
받은  것인지, 백제 관료가 망명한 것인지 등 영토 문제와 함께 정치적 배경 등 다각도의 검증이
 
 
요하다”고 말했다.
 
 
 
=> 원래 의도하던대로의 발굴은 아니었지만(고려대장경)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굴이었습
 
니다. 앞으로 신라와 가야 그리고 백제의 관계에 대한 더 많은 자료와 유물, 유적이 나와
 
각 나라의 역사가 더 풍부해 졌으면 좋겠네요.
 
 

Comment

야동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