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여행자료실
무료웹툰,무료야동,야동사이트,일본야동,토렌트 사이트
  • 임수연
  • 11-08-09 18:40
  • 10,106

(웹진 1호 - 기획기사) 145년 만의 혜후, 외규장각 의궤전

 

외규장각 도서, 145년의 방황을 마치다.

 
 
 
 
 
 
 
 
 
 
 
  
 
무릇 국가에 일이 있으면 의궤를 작성하여
 
 
훗날 살펴볼 전거로 삼는 것이다.  (명종실록, 18 년 9월 22일 기사중<1563년>) 
 
 
 
 
 
 
 
 
 
 
 

 

외규장각 의궤전

 
올해 2011년 프랑스가 빼앗아 간 의궤를 145년 만에 되돌아왔습니다. G20 서울정상회의에서 한국과 프랑스 양국 정상이 ‘의궤 대여’(5년마다 다시 계약하는 대여 방식)에 합의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에서는 되돌아온 의궤와 임금님들이 직접 보던 어람용 의궤를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병자호란과 외규장각

 
외규장각은 조선시대 22대 정조가 왕실의 귀한 서적을 한 곳으로 모아서 보관할 목적으로 세운 도서관입니다. 그런데 1866년 프랑스는 강화도를 침입하면서 그 안에 있던 귀중한 도서 340여 권과 지도 갑옷 등을 훔쳐갔습니다. 그 중에는 왕실의 다양한 행사들을 기록한 의궤가 있었습니다.

의궤 구성

 
의궤에는 종류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일반 사고에 있어,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보며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분상용과 임금이 보기 위한 어람용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내용적인 측면으로도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도설과 반차도 입니다.
 
 
 
 
 
 
 
 
 
 
 
 
 
 
 
 
 
 
 
 
 
 
 
 
 
 
 
2011 Copyright Su-yun Lim.
 * 의궤 귀환의 일등공신  박병선 박사
 
 박병선 박사는 1929년 생으로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입니다.
 
 그녀는 프랑스 유학기간 중 1967년부터 13년 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를 하였습니다.
 
 1975년 그녀는 이곳에서 한국의 기록문화유산이 있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찾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외규장각 도서의 목록은 찾았지만, 외규장각 도서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다른 친구들을 통해 베르사유 도서관에 비슷한 도서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윽고 외규장각 도서를 찾았으며, 외무부에 지속적으로 외규장각 도서 회수를 위한 자료를 제공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늘 우리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어람용 외규장각 도서를 보고, 학회에서 이 도서를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박병선 박사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외규장각 도서를 보던 중 우리의 국보급 기록문화 유산에 영어의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마음이 아프더군요~ 이번에 보는 이 외규장각 도서도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반쪽만 돌아온 것입니다. 
 
잠정적인 대여 방식으로 외규장각 도서가 한국에 들어온 것이라고 합니다.
 
 
 若以此書諸儀軌 則當時與後世 皆得以洞知矣
 
 만약 이 제도를 의궤에 기록해 둔다면
 
 지금은 물론 후세에도 모두 훤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명종실록 1년 4월 8일 기사 중(1546년)
 
 
 
 
의궤의 힘으로 세계문화유산이 된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정조가 수원으로의 천도를 꿈꾸며 만든 읍성입니다.
 
따라서 산세를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적의 침입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상 정조가 꿈 꾼 천도가 불가능했습니다.
 
이 후 수원화성은 한 번도 전투에 이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수원화성의 성곽이 망가지고 망루가 불에 타기도 하였습니다.
  
수원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처음 만들어졌던 모습 그대로의 복원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화성성역의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의궤는 매우 중요한 기록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omment

야동 사이트